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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직분

https://youtu.be/ifR-sTE6jqs?si=x-7GYUtRkV5B-ECt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물 수건이 벽돌에 붙는다..
단정한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벽돌을 닦던 청년이 일어나며, 젖은 수건을 던졌다. 준수해 보이는 청년은 가까이에서 보면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양동이의 물에 수건의 먼지를 씻어내던 청년은 답답했다.
"왜 이런일을 시키는 걸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허리를 펴고, 그 동안 닦은 벽돌을 살폈다. 성당을 둘러싼 붉은 벽돌은 먼지를 털고, 물걸레로 닦아도 티가 나지 않았다.
이마의 땀을 팔로 훔쳤지만, 덥다거나 땀이 흘러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라도 하면 마음 속의 답답함이 덜해질까 싶어서 였다. 붉은 벽돌은 빗자루로 먼지를 털어도, 젖은 수건으로 훔쳐내도,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도 닦기 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닦아도 더 깨끗해 지지 않는 벽돌이 마치 지금 자신의 답답한 마음 같았다. 그늘이라고 해서 여름 날의 더위가 덜하지는 않았지만 답답함 때문에 여름 날 더위를 때때로 잊을 정도였다. 자신이 멍청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의미없어 보이는 일에 대한 의미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물걸레를 던져버린 것이다. 벽에 붙은 물수건을 보며, 청년은 생각이 많아졌다.

토마스 오빠! 신부님께서 성당으로 오라고 하셔.
사비나가 주임신부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간호학과 졸업반인 사비나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다니러 왔다. 또래의 여학생 답지 않게, 사비나는 말 수가 적었다.
고마워! 오랜 만이네. 학교 생활은 어때?
이 번 방학은 다음 주부터 실습이라 없는거나 마찬가지야. 하며 이야기만 전해 주고 돌아갔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청년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첫 번째 방학을 맞았다. 강을 끼고 있는 조그만 읍소재지인 고향은 청년에겐 정겨운 곳이었다 .언덕을 오르던 청년이 다리를 쉬며 뒤돌아 본 언덕아래로는 반달모양으로 모양이 예쁜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다. 주임신부의 부름에 서둘러가던 청년의 눈에 익숙한 풍경이 들어왔다. 도로를 중심에 두고, 단정하게 다듬어진 가로수, 도로 아래쪽의 시장과 상가가 이어졌다. 상가아래로는 관광객을 위한 식당가과 도로, 그리고 다시 강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풍경.. 작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잘 정돈된 고향마을이었다.  동쪽에서 흘러 들어온 강물이 산아래의 절벽을 곧장 지나쳐 서쪽의 철교와 다리아래를 지난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 오늘 따라 하나 하나 더 아름다왔다. 초여름의 오전 시각이라 그런지 바람마저 상쾌했다. 곧게 뻗어 흐르는 강에서 시선을 돌린 그의 입에선 익숙한 성가가 흘러 나왔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하나되어.. 그 성가가 그의 머리 속에 잔잔하게 울렸다.

청년은 가톨릭대학에서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학생이다. 학부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들어가면 신학생들은 시종직을 수여 받는다. 독서직이 교회공동체의 전례에서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직무라면, 시종직은 제대의 초를 밝히는 것과 같은 전례를 보조할 수 있는 자격을 교회로 부터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평신도들도 받을 수 있는 전례와 관련된 직위였지만, 어릴 때 붙어 줄곧 성당을 다닌 청년에게 시종직은 마치 사제 서품을 받고 할 일을 미리 할 수 있도록 베풀어진 엄청난 영광처럼 느껴졌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첫 방학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러 가는 전철 안에서
"난 이번 방학에 고등부 학생회와 함께 수련회를 갈 계획이야.
작년에도 교사 선생님들하고 학생들하고 너무 재미있었어."
넓은 이마에 시원하게 머리를 양쪽으로 가른 요한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겠다. 요한. 우리 성당은 학생들이 거의 없는 시골성당이라서 수련회는 계획에 없는데.."
토마스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지난 학기에 시종직도 수여 받았으니, 평일 미사에 강론을 하게 되지 않을까?
토마스 난.. 너무 기대가 되.. 내가 신자들 앞에서 강론을 하게 되다니.."
평소답지 않게 들뜬 얼굴의 요한이 낯설기 보단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는 요한의 방학계획이 약간은 부러웠다.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시골에서의 특별한 일 없이 지낸 자신의 방학과는 달랐다.

"주임 신부님께서 왜 찾으실까?"
성당의 주임신부는 신자들에게는 그렇게 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학생인 청년에게는 주임신부가 마치 호랑이처럼 느껴졌다. 그 호랑이같던 주임신부님께서 4학년 때 독서직을 수여받고 집에 왔을 때, 교중미사에서 복음 말씀을 대신 읽으라고 했다.
청년은 2독서가 끝나고, 복음 화답송을 하는 동안 무릎꿇고, 주임신부의 축복을 받던 때가 생각났다. 신학교에서 고생한 댓가를 받는 것 같은 기분도 약간은 들었다. 신자들이 많이 참석한 미사에서 복음을 읽던 그 때가 학교 생활을 하며, 가끔 떠 올랐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청년은 어느 덧 언덕위의 성당에 도착했다. 정문 옆의 마리아 상 앞에서 성호경을 긋고, 잠시 목례를 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성당에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린 청년이 사제관 초인종을 눌렀다.


이리 들어오게.. 토마스. 학교 생활이 힘들지?
하며 주임신부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닙니다. 신부님!"
긴장해서 인지 큰 소리로 대답하는 청년에게 주임 신부가 말했다.
"사제관 뒤쪽에 가서 양동이와 걸레를 가져오게."
영문은 몰랐지만, 어디 청소를 시키시려나 보다하고, 시키는 대로 가져오니.. 주임신부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토마스. 잘 듣게."
"이제부터 자네는 이 성당 모든 벽돌을 하나하나 다 닦았으면 좋겠네. 물론 먼저 물걸레로 닦고, 그 다음에 마른걸레로 한 번 더 훔치고, 이번 방학 동안 이 성전에 있는 벽돌 하나하나를 모두 닦았으면 좋겠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성당이 비록 작긴 했지만, 성당의 외벽은 모두 벽돌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모두 닦으려면, 족히 두세달은 걸릴 듯 했다. 집에서도 신학교에서도 청소는 했다. 그렇지만 붉은 색 벽돌을 물로 닦고, 마른 걸레로 훔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다 닦아도 바깥 쪽이기 때문에 다시 먼지가 끼고 예전으로 돌아갈 듯 했다. 그렇지만 못하겠다는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 하고 말하는 청년에게 주임신부는
"이제 그만 가보게. "하며 선량한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순종적인 성격이었지만, 주임 신부의 표정이 마치 어디 한번 힘들어봐라. 하며 자신을 약 올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토마스의 머리 속은 복잡했다. 다른 신학생 친구들은 대학원생이 되어서 시종 직분을 받았으니까, 고향으로 가면 강론도하고, 미사 때 수단을 입고 성체 분배도 한다는 데.. 나에게는 왜 벽돌 닦는 일이 주어졌을까? 머릿 속은 복잡했지만, 그 다음 날 부터 청년은 물을 양동이에 받고, 막대걸레 자루에 빗자루를 메달고 성당 벽돌을 닦을 준비를 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성당 동쪽 모퉁이부터 벽돌을 닦기 시작했다. 빗자루로 작은 거미줄을 털어내고, 먼지를 털렀다. 붉은 벽돌에 오래 묵은 먼지는 잘 털리지 않았다. 빗자루로 두번 세번 털어야 했다. 빗자루로 먼지를 털고, 물걸레로 벽돌을 닦으면, 오래 묵은 먼지가 물을 밷어냈다. 물걸레를 물에 푹 적셔서 몇번을 씻어내야 닦은 티가 났다. 처음엔 물양동이 하나로 시작했지만, 양동이 하나에 물을 더 받아서 마무리로 닦아냈다. 벽돌에 오래된 먼지 때문에 열장도 채 닦지 못하고, 다시 양동이에 물을 받으러 갔다. 물로 닦은 벽돌을 하른 걸레로 하나 하나 훔쳤다. 정성들여 닦았지만 닦기 전의 벽돌이나 닦은 후의 벽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먼지가 앉으면 금방 닦기 전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높은 곳은 사디라를 타고 닦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고, 낮은 곳에 있는 벽돌을 닦을 땐, 그의 몸은 먼지 범벅인 물과 땀에 흠뻑 젖었다.

학사님! 오늘도 아침에 성당에 가시나요?
아침상을 차려주던 마리아가 안타깝게 물었다. 수더분한 인상의 마리아는 청년의 엄마였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진 않았지만, 어렸을 때 부터 한번도 말썽을 피운 적 없이 곱게 자란 아들이 신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마리아는 내심 아들이 신부가 된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방학이 되어 다른 친구들은 해외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기도 하고, 노는데 정신이 없는데.. 성당에가서 하루 종일 벽돌을 닦고 있는 아들이 안타까왔다. 더운 날 땀을 흘리며 일하는 아들을 위해 시원한 수박화채를 준비해서 성당으로 갔다가.. 아들의 모습을 멀리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미처 전해 주지 못하고 그냥 눈물을 글썽이며 내려왔다. 아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 신부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신학교를 간다는 데 반대를 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도.. 남편 요셉도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아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고, 저녁 밥상에 앉아, 식사 전 기도를 마친 후.. 오늘 힘들지 않았어요? 날도 더운데.. 하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부님. 성당 청소를 여러사람이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제관을 나서며 중년의 남자가 주임신부에게 말했다.
중년의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어울리지 않게 손이 두꺼웠다.
"아닙니다. 회장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학사님이 참 대견하긴 하지만.. 혼자 성당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 안쓰럽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장님. 저도 토마스가 참 대견합니다."
주임신부와 중년의 남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차에 올랐다.

오늘도 청년은 벽돌을 닦고 있다. 성당으로 올라오는 발걸음이 느리고 무거웠다. 시간이 되었으니.. 지시를 받았으니.. 하기로 했으니.. 그저 언덕길을 오를 뿐이었다. 역시나, 붉은 벽돌은 닦아도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았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의미없는 일을 시키는지 불만이 마음 한편에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불만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순명이라는 두 글자였다. 성모마리아께서 천사 가브리엘의 말에 순종하시듯, 청년은 말없이 벽돌을 닦고 있었다. 한장.. 두장.. 높이 있어 사다리를 타고 닦아야 하는 벽돌도.. 바닥에 빗물로 튄 흙이 범벅이 된 벽돌도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정성들여 한장 한장 닦았다. 의미없는 숙제같아 불만도 있었지만, 기도와 함께 벽돌을 닦았다. 묵주 한알에도 정성을 담아 기도하듯.. 한장 한장 벽돌의 먼지를 털며, 벽돌을 물걸레로 닦고, 훔쳐내며,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해서일까? 마음 구석에 자리잡았던 불만이 차츰 한 쪽으로 밀려났다. 처음 벽돌을 닦을 때 입었던 옷은 오래된 먼지와 땀에 쩔었지만, 마리아가 매일 깨끗하게 빨아서 말려 주었다. 처음에 입었던 청바지도 색이 바래고, 일부는 닳아서 없어져서 자연스러운 작업복이 되었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벽돌닦기가 이제 한시간 정도만 하면 다 할 것 같았다.

방학이 되어 가끔 성당에 올라온 학생들이 학사님. 같이 도와 드릴까요? 할 때도.. 토마스는 아니야. 이 것은 나의 일이니까.. 내가 해야만 해.. 하며 거절했다. 주임 신부님께서 따로 불러서 이야기한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청년의 가슴 한편에 있던 불만은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지만, 이젠 흥얼 흥얼 노래를 하며, 벽돌을 닦는다. 오늘 성당의 벽돌 닦는 일을 모두 마치면, 주임신부님께 일이 끝났다고 이야기할 자신이.. 마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내어준 숙제를 정성들여 마친 다음, 숙제 검사를 받는 것처럼 뿌듯했다. 집에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매일 참여하는 미사에 참여할 것이다. 오늘은 저녁미사가 있는 날이다.

벽돌을 닦기 시작할 땐, 무겁기만 했던 성당올라가는 발걸음이 오늘은 방학을 시작했을 때 처럼 가벼웠다. 이제 방학도 곧 끝난다. 주임 신부님이 내 준 어려운 숙제를 마친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다. 신부님께서 무언가 상을 주실 것 같은 기대도 했다. 대학원을 마치면.. 이제 세 학기만 더 지나면 부제품을 받는다. 지금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신부님의 존경스럽고, 영광스러운 모습에 한 발 더 가까이 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뿌듯했다. 까탈스러운 호랑이 주임신부님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내 준 과제를 무사히 마쳤다. 이렇게 한발 두발 사제가 되는 길에 더 가까이 가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어머니 마리아가 지금은 자신을 안타깝게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아버지 요셉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벽돌 닦기가 끝이 보일 무렵 주임신부가 토마스에게 말 했다.
토마스. 그 동안 수고 많았네. 내일 미사에서는 복음 말씀을 읽고, 내 대신 강론을 해 주게..
청년은 밤새워 신자들에게 강론을 할 준비를 했지만, 정신은 파란 가을 하늘처럼 너무나 맑았다. 아침을 먹으며, 오늘 강론 이야기를 했다. 마리아와 요셉은 크게 기뻐하여 오늘 꼭 저녁 미사에 참석하겠노라고 했다. 토마스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힘든 주임신부님의 숙제를 마쳐서 받은 큰 상 같았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준비한 강론을 차분히 했지만, 강론하기 전까지 토마스는 마치 처음 미사를 한 듯 정신이 없었다. 미사가 모두 끝난 후 옷을 갈아입고 성당문을 나서는 토마스에게 주임신부가 접은 편지지를 주고는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손으로 쓴 성경구절이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7~17:10]
아!
청년은 깨달았다. 왜 의미없어 보이는 벽돌닦기를 자신에게 시켰는지.. 신부가 된다는 것은.. 사제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종은 주인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댓가를 바랄 수 없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벽돌을 닦으며, 이미 자신이 받을 것은 모두 넘치게 받았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청년의 표정은 가을 걷이를 앞둔 들판처럼 황금빛으로 상기되었다.